충효동
조선시대에는 송화촌, 1914. 4. 1 면제(面制) 실시로 충효리, 1955. 9. 1 시제(市制) 실시로 충효동이라 칭함.
- 재동(才洞)마을 : 기와를 굽고 대장간을 차렸다하여 재해골이라 하다가 고려시대에 청자를 구운 후 재동이라 함.
- 하마(下馬) : 이 마을에 아랫하마와 윗하마가 있었는데, 아랫하마에서 말에서 내려 윗하마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비(碑)가 있어 마을이름을 하마라 함.
- 미륵(彌勒)동 : 신라시대부터 전해오는 귀중한 미륵불상(彌勒佛像)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짐.
- 능남(陵南) : 김유신(金庾信)장군의 묘가 금산에 위치하고 흥무왕(興武王)에 봉하므로 묘를 능이라 부르게 됨에 따라 능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짐.
- 야척(也尺)마을 : 조선조 말기에 선도산 줄기와 대문재산 사이의 산모양이 어조사야(也)자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부르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