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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신라육부촌중 모량부의 무산대수촌으로 현실이라 칭하였으며,
  • 고려시대 계림부에 속하였다가
  • 1906년 경주군 현곡면으로 칭함.
  • 1955.9.1 : 월성군 현곡면으로 개칭(10개 법정리, 23개 행정리로 구분)
  • 1995.1.1 : 도농복합형태의 경주시 현곡면으로 개칭.

위치 및 지역특색

  • 위치는 북위35° 5' 동경129° 13'로 경주시의 북서쪽에 있다.  
  • 남동부의 형산강을 경계해서 경주시와 접하고, 서부는 어임산과 구미산의 준령을 경계로 해서 건천읍, 서면 및 영천군 고경면과 접하며, 북부는 금곡산 준령을 경계로 해서 안강읍과 접하고 있다.
  • 연간강우량은 1000㎜정도이며,
  • 특히 천도교의 발상지인 용담정은 그 주위를 포함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래

  • 금장리(金丈里)
    금장대가 있었으므로 금장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석장리와 부내면의 성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금장리로 하였다. 1987년 1월1일 금장2리인 석장리는 경주시 석장동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금장을 금장1리, 가삼동을 금장2리, 금장1리의 아파트지역을 금장3리 ~ 10리로 하였다.
    • 옹기골 : 약100년 전부터 옹기를 많이 생산한 지역임.
    • 가삼동 : 약250여년 전까지 가삼재배지였다고 한다.
  • 상구리(上邱里)
    마을 뒷산이 거북이 모양이라 구미산이라 하였고, 마을 이름도 구미산 위쪽에 있다 하여 ‘상구미’, ‘웃구미’, ‘상구’라 불렀다. 혹은 구무들 위가 되므로 ‘웃구무’라 불렀다고 한다.
    • 상구미 : 구미산 위쪽에 있다하여 : ‘상구미’, ‘웃구미’, ‘상구’라 부르게 되었다.
    • 구평 : 마을 들판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의 형상이라 하여 ‘구평’, ’구미들‘이라 불렀다.
    • 가막골 : 신라시대 이곳에서 궁성의 말을 사육하고 훈련시키던 곳이라 하여 ‘가막골’, ‘가목’, ‘가목골’이라 하였다.
  • 하구리(下邱里)
    구미산 아래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하구미’, ‘하굼’, ‘아릿구미’, ‘하구’라 했다.
    • 하구미 : 구미산 아래에 마을이 있다고하여 ‘하구미’, ‘하굼’, ‘아릿구미’, ‘하구’라 불렀다.
    • 고천 : 산의 형세가 한자의 내천(川)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어 고천이라 칭하였다 한다.
    • 서당골 : 조선시대 이 마을에 좌명공신 양경공 서유를 추모하는 구산서원이 있었으므로 ‘서당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 다경 : 일제 강점기에 생긴 마을로 경사스러운 일이 자주 있으라는 뜻에서 ‘다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 가정리(柯亭里)
    정자나무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 갓질,지곡 : 갓과 같고 그 밑마을이라 해서 갓골이라 했다. 또 여강 이씨의 할아버지 이름자인 지초지(芝)자를 따서 지곡(芝谷)이라 했다.
    • 마룡골 : 현 용담정 위에 용치에서 용마가 났다 해서 용마골이라 한다. 일설에는 이곳에 용처럼 생긴 말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전한다.
  • 남사리(南莎里))
    마을 앞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남사라 했다.
    • 북골,종동 : 전설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때 손순(孫順)이란 사람이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있었는데 그의 어린 자식이 노모의 반찬을 먹어 그 부부는 자식을 생매장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마을 남쪽 산에 가 땅을 파니 종이 나왔다. 그 종을 치니 소리가 궁성까지 들렸다. 왕이 손순을 효자라 표창하고 종을 얻은 산을 북골이라 하고 마을을 종동(鍾洞)이라 명명했다 한다.
  • 내태리(來台里)
    산림이 우거져 하늘에 별만 보인다 해서 마을 이름이 됐다.
    • 곰바우 : 어느 날 뒷산 바위에 곰의 몽둥이가 비쳤다 해서 그 바위를 곰바위(熊岩)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여기서 왔다.
  • 무과리(武科里)

    무과는 옛날 무과시험장으로 이용하던 곳이라 하는데, 경주김씨 성을 가진 이가 개척하여 마을이름을 무과 또는 무괄로 부르게 되었다. 옛날 이곳 주민들은 말이 달리는 꿈을 자주 꾸었다고 하며, 한밤중에 사방이 고요해지면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전해진다.
     

  • 소현리(小見里)

    신라도성에서 마을이 조그마하게 보인다 해서 소현이라 했다 한다.

    • 지일(智日) : 마을의 동쪽 산이 높아 해가 뜬 것을 알려면 한나절이 지나야 알수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오류리(五柳里)

    마을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다 해서 마을 이름이 됐다.
     

  • 나원리(羅原里)

    신라 헌덕왕 때 건립한 난원사(蘭原寺)에 의해 난원이 됐다가 나원으로 부르게 되었다.